오늘 [사물의 비밀]의 감독이자 제작자인 이영미 감독과 [량강도 아이들]의 제작사 김동현 대표가 함께 기자회견을 했단다.
기자회견 제목은 "벼랑 끝에 선 독립자본 영화제작자들".
기자화견에서 나왔을 듯한 이야기가 솔직히 새삼스럽지는 않다. 올해만 해도 여름 개봉작 [소중한 날의 꿈]이 이와 유사한 일을 당했고, 2009년엔 [집행자]와 [하늘과 바다]의 제작사와 출연진이 유사한 문제를 제기했다. 저예산영화, 독립영화 등이 시장 지배적 멀티플렉스 사업자들로 부터 외면 받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알고 보면 이런 일은 1년 내내 벌어진다. 개봉하는 독립영화/저예산영화는 모두 이런 일을 당한다. 정상적으로 볼 수 없는 일들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양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아주 가끔 독립영화 보다 더 많은 제작비와 홍보비를 들였으나 역시나 같은 불이익을 당한 영화의 제작자들이 문제를 제기할 뿐, 너무나 당연한 듯 독립영화는 스크린을 공유한다. (절대로 아름다운 공유 정신의 실천은 아닐텐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영화진흥을 책임져야할 영화진흥위원회는 뚜렷한 대책이 없다. 심하게 말하면 도대체 뭘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고민을 하실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2001년 이른바 '와라나고' 사태 이후 제도화된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사업, 독립영화전용관 지원 사업 말고는 뚜렷한 상영 시장 공정 경쟁을 위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해는 한다. 강제적인 규제 조항(법)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영진위가 시장을 제어할 어떤 권력이 있는 것도 아닐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그냥 놓고 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먼저,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활동은 아니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현재 한국영화 시장을 제대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영화 시장은 "(독)과점 질서가 안착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독)과점 질서가 안착화 되면 질서 내의 플레이어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이익을 영위할 자리가 허락되지만, 질서 밖의 플레이어들에게는 넘기힘든 장벽이 생겨버린다. 너무나도 가혹한 장벽 말이다. [사물의 비밀] 등이 겪은 문제는 이 영화의 제작/배급사가 안착된 (독)과점 질서 밖에 있는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인 셈이다.
영진위는 "공정경쟁환경조성특별위원회"를 꾸렸다면, 영화인들이 불공정 행위를 신고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서는 곤란하다. 불이익을 받을 게 뻔한데 누가 알아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나? 특위를 꾸렸다면 현재 시장이 어떤지, 공정경쟁 환경이 갖춰져 있는지 조사부터 해야한다. 시장의 경쟁 환경이 어떠한가를 명확하게 규정한다면, 그 때 그 판단에 따라 필요한 정책들을 생산하고 집행하면 된다.
정말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공정경쟁환경조성특별위원회에서 '영화시장 공정지수'를 개발하든지, 영화문화다양성을위한 소위원회에서 '상영시장 다양성 지표'를 개발하든지 해서 매시기 '영화 시장이 공정한가 아니한가' 혹은 '다양성이 보장되는가 아니한가'를 공개하여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이라도 해야할 것이다. 이것도 엄연한 일이다. (생각해보면 매우 기초적이고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오늘 기자회견에서 정확하게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기사를 통해 보면 영화 개봉 하루 전에야 계약서가 오가고, 그 전에는 정확한 개봉 스크린 수와 개봉 일수도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오늘 기자회견을 한 사람들이 영진위 해당 특위에 신고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이번 사안에 대해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조사를 해서 결과를 발표해야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하다못해 계약서를 사전에 작성하지 않는 것은 누구를 위한 관행인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대안을 못만들어도 좋으니 현실을 제대로 조사라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판단부터 먼저 하자. 말로만 떠는 것보다는 생각보다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섬세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겠지만) 한국 영화산업이 음반산업과 유사한 길을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말하는 음반산업의 길이란 전통적인 규모를 가진 음반(기획)사가 시장에서 폐퇴하고, 유통(온라인/방송 등)을 매개로 음악시장에 진입한 새로운 사업자(대기업 등)와 아이돌이라는 콘텐츠로 무장한 사업자가 시장을 장악한 상황, 그리하여 80~90년대(특히 90년대)를 풍미했던 대중음악작가들의 입지가 축소되고, 예전같으면 그 자리를 이어왔을 아티스트들이 '인디'라는 이름으로 일단 시장에 진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 거칠게 정리하면 중간은 사라지고 유통을 장악한 메이저와 인디로 양분된 상황으로 흘러간 것을 말한다.
한국 영화산업이 이렇게 흘러가다보면, 유통을 장악한 대기업이 만드는 기획상품으로서의 영화가 시장을 장악하고, (전통적으로) 창조적 기획자인 프로듀서들의 자리는 사라지고, 기획 상품이 아닌 영화는 '독립'적인 방식으로 제작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올 것 같다는 짐작인데, 이런 상황 속에서 '독립영화'는 없어지지 않겠지만, 지금 이상의 규모를 갖추게 되지도 못할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창작자를 추려낼 수 있는 정도, 그리고 독과점 기업이 독과점 상황이라며 욕을 먹지 않기 위해 배푸는 배려 정도의 규모를 유지하게 될지도.
한국 영화산업에도 메이저와 인디의 협력 모델이 등장할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메이저와 인디의 협력이 있기는 하지만, 전면적으로 나타날 것 같지는 않다. 메이저와 협력하는 인디의 역할을 영진위 영화 아카데미가 전면적으로 하고 있을 뿐더러, CJ는 필라멘트라는 자체 브랜드를 실험하고 있는 중. 물론 필라멘트와 인디스토리가 [티끌모아 로맨스]라는 협력을 하긴 했다만, 이런 프로젝트가 지속될지는 미지수. CJ 입장에서 영진위 영화 아카데미의 존재는 메이저와 인디의 협력 관계를 테스트하는데 비용을 크게 지불할 필요를 없애준 꽤나 고마운 존재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메이저와 인디의 협력 모델이 다시 등장하려면, CJ 외에 다른 메이저 플레이어가 행동을 해야하는데, 롯데는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쇼박스는 사업 정리 중이란 느낌이 강하다. 그렇다면 인디의 입장에서 협력해야할 메이저가 분명치 않다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남는 건 일단 방송. 뭔가 방송정책이 제대로 흘러갔다면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에서 인디와 방송(메이저) 간의 결합모델이 등장할 수도 있었겠다만 방송정책이 개판이라 기대할 건 없어보이고, 지상파보다는 케이블 방송 사업자와 결합하는 모델은 상상해 볼 수 있겠다. 이점에서 인디스토리와 MBC 드라마넷의 협력은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 (티캐스트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좀 있으신데, 한국 콘텐츠 제작보다는 외국 콘텐츠 수입-상영/방영에 더 목매고 있는 것 같아 기대할 게 많지는 않아 보인다.)
인디가 메이저랑 협력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유감스럽지만 시장에서의 공정 경쟁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그리 크게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일단 여기까지만)